“어지러워서 넘어질 수도 있으니 앞에 있는 기둥을 꼭 잡으세요”
근무하던 직원이 가볍게 주의를 준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한 너스레로 여기고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체험이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기둥을 잡고 있던 손목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시각과 청각을 완벽히 속이며 가상세계(이하 ‘VR’)가 현실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VR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자연스럽게 관심도 높아졌다. 게임용 헤드셋‘오큘러스 리프트’로 롤러코스트를 경험했을 때의 기억이다.
2014년 3월 25일, ‘오큘러스 리프트’를 개발한 ‘오큘러스VR’를 페이스북이 인수했다는 발표가 보도되었다. 아직 정식 제품 하나 없는 기업에 23억달러(2조 5천억원)나 투자 했으니 호사가들이 좋아할 만한 뉴스거리이다. 그런데, 의외로 무미건조한 기사들만 접할 수 있을 뿐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얼마전에 있었던 왓츠앱(Whatsapp) 인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소셜네트워크 최강인 페이스북과 가상현실 기업이 함께 하는 모습을 당장 그려보기가 어려우니 해석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번 인수를 알리는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달린 댓글을 보면 부정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페이스북의 돈놀이일 뿐이라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인수건을 지켜보며 저커버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고 있다.
오큘러스VR의 가능성을 본 그의 안목 때문만은 아니다. 인수 합병에 대한 그의 철학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인수 합병을 결정할 때는 수익성, 자사 서비스와 시너지 여부, 인재 확보 등을 보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커버그는 이러한 상식과 전혀 무관한 곳에 23억달러를 지불했다.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가 전부이다.
저크버그도 VR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로 선택한 것 뿐이다. 4억 5천만명의 가입자를 가진 왓츠앱(Whatsapp) 인수는 의사 결정의 문제이다. 하지만, 실체없는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는 철학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철학으로 새로운 기술을 모은다면 페이스북이 미래 플랫폼을 장악할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철학은 무모함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필자가 이번 인수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도전하는 페이스북의 모습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10억명의 가입자를 가진 기업이다. 끝없는 인수 합병을 통해 수평확장과 수직통합을 진행하는 저돌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일반적인 전략을 실행하는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의 모습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 인수 소식을 듣고 '오큘러스 리프트' 기억이 떠오르며 웨어러블 시장을 여는 것은 애플과 삼성이 아니라 페이스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웨어러블 기기는 스마트워치, 스마트밴드 등과 같은 WMD(Wrist Mounted Device)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사업자들의 고민은 갑자기 작아진(또는 사라진) 디스플레이에 정보를 전달하는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한데 있다. 플랫폼, 킬러앱등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도 이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현재 시장 트렌드를 무시하고 HMD(Head Mounted Device)를 선택했다. 지금까지 시장의 고민을 뛰어넘는 선택이다. 물론, 그 전에도 HMD는 존재했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에 기반하는 ‘구글글래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구글은 디스플레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현실 세계의 정보’라는 틀에 머물렀다. 오큘러스VR은 웨어러블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모든 화두를 비껴간 전혀 다른 개념의 제품이기도 하다.
이번 인수를 통해 페이스북이 단기간에 효과를 본다거나 웨어러블 시장에서 오큘러스VR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란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페이스북이 미래 시장을 접근하는 자세와 도전하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엑셀을 바라보고 의사 결정하는 기업은 실패를 하지는 않겠지만 미래를 만들어가지는 못하는 법이다. 페이스북은 5년후, 아니 10년후의 미래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 이 글은 제가 ZDNET Korea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개인적인 기록을 위해 이곳에 남깁니다. 원본 글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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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중간에 인용된 자료에 질문할 거리가 있어서 댓글 남깁니다. 국가별 디지털 컨텐츠 비중이라는 표(출처 : HIS & APP ANNIE)에서 "Game excluding apps"와 "Game"을 합쳐서 모두 Game 관련 매출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game excluding apps"는 "게임이 아닌 일반 앱"을 뜻하는게 아닌가요? 짧은 생각이지만 "전체 디지털 컨텐츠 지출 중에 92.1%가 게임"이라는 점이 다소 믿기지 않아서요 ^^; 원 자료의 출처를 검색해도 찾지를 못하겠네요^^; 다음 포스팅도 궁금해지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단견이지만, 저는 '다양한 플랫폼'에 대해 조금은 비관적인 의견인데, 이보다는 '정부측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소수의 잘 관리되는 플랫폼'이 장기적으로 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쓴분 말씀이 맞습니다. "game excluding apps"는 게임을 제외한 앱을 의미하지요.
자료 잘 봤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면서, 세번째 항목에 대해 의견이 있어 몇 자 적습니다.
Statista에서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모바일 게임이 전체의 5.2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해당 자료는 "Average monthly revenue per mobile app and content user in South Korea as of August 2013, by category (in U.S. dollars)" 이고, 월 평균 ARPU를 달러로 표시한 내용입니다. 원래 자료에서도 %로 표기되어 있지만, $의 오기로 보입니다. 따라서, 해당 자료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모바일 게임에 월평균 $5.27을 쓴다 정도일 것 같습니다. 2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결론은 바뀌지 않지만요.
그리고 해당 자료는 SKT T스토어를 소스로 했다고 나오는데(In August 2013, Flurry Analytics measured 33,527,534 active smartphones and tablets in South Korea. Data refers to SK Planet's T Store, apps and content only, excluding physical goods.), 국내 시장 전체에 대한 정확한 값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전체로 놓고 봐도 게임 분야 매출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결론은 같을 것이구요..
지나가다 궁금해서 좀 찾아본 내용 말씀드립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